한국화, 용어의 경계에 서다

박생광(1904~1985/한국) 무당(한지에 채색/130×70cm/1981년)
일본에서 아방가르드 그룹에도 참여했던 박생광은 오랫 동안 왜색 화가로 외면 받았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한국화’ 논쟁 속에서 그는 전통 단청, 무속화 등을 탐구했고 자신의 대표적인 화풍을 확립한다. 단청 기법을 응용하여 주황색 선으로 형태를 그린 다음 강한 원색으로 빈 공간을 칠하였으며, 먹을 뿌리고 채색을 반복하는 독자적인 표현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무속화에서 보이는 강한 발색을 재현하기 위해 단청에 쓰이는 값싼 안료를 사용하였고 후에 색이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했다. 단절된 채색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문제는 화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미술계 전체의 과제임을 보여준다.
1. 한국화의 뿌리와 현재
한국화(韓國畵)란 전통적인 재료, 기법과 주제를 바탕으로 한 회화 양식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4~7세기)와 같은 초기 회화 양식 이후 1600여 년의 유구한 기간 동안 한국의 독특한 정서와 혼을 담은 전통 회화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방대한 영역으로 누가 그렸는가(문인화, 화원 화가), 어떤 재료와 도구를 사용했는가(수묵화, 채색화 등), 어떤 주제를 담았는가(산수화, 인물화 등)에 따라 분류한다. 하지만 문인과 화원과 같은 신분도 사라지고, 현대에는 디지털 도구와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며 모든 영역이 융합되고 혼용되는 상황에서 한국화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 동서양의 충돌과 한국화
20세기 초 ‘서양화(西洋畵)’가 들어오면서 ‘서화(書畫)’ 등으로 불리던 전통 회화를 통칭할 이름이 필요했고 ‘동양화(東洋畵)’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물론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아직은 제한적이었다. 당시 지필묵, 안료 등을 사용하던 동양의 시각에서 서양화의 유화는 상당히 충격적인 매체였다. 현대에도 서양화와 동양화를 구분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 이 재료와 도구이다. 가령 서양화가 오일 베이스라면 전통 동양화는 물을 용매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유화가 개발되기 전에 서양 회화에서도 아교와 어교와 같은 수성 재료를 사용했다. 또한 전통 채색화에서도 들기름을 혼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동서양 회화의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음을을 시사하며, ‘한국화’ 정의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명한 색채를 유지하는 이유, 즉 안료 성분과 채색법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3. 한국화 용어 논쟁이 낳은 창조적 운동
1970년대 민족적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중국이 자신의 전통 회화를 ‘국화(國畵)’로 일본이 ‘일본화(日本畵)’로 부른다는 점에서 ‘한국화’에 대한 논의가 전면에 등장한다. 1980년대 이르러 ‘한국화’는 교과서에 사용되는 등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문인화 중심에서 민화와 진경산수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한편 서양화 작가들이 ‘한국인이 그린 그림은 모두 한국화이어야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였고, 재료와 기법이 혼용되면서 기존의 한국화란 용어를 넘어 전통 회화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한국화의 정체성은 고정된 답이 아닌, 지속적인 질문 그 자체일지 모른다.


이배(1956~/한국) 붓놀림 4-05(종이에 수묵/162×130cm/2021년)
서양화를 전공한 이배는 한국화의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여 흑백의 서체적 추상과 설치 미술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30년 넘게 먹의 재료인 ‘숯’이라는 물성을 탐구하며 붓질과 먹선의 미묘한 질감, 색을 통해 동양적인 사색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죽어가는 소나무를 태워 숯으로 다시 태어나고...숯은 수백 가지 검은 질감과 반짝이는 성질을 지닌다’
1. '한국화'라는 용어가 현대 미술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2. 서양화와 한국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3. 이배와 박생광의 작품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떤 방식으로 융합되었는가?
작성자
(前) 미진사 본부장 최진선
참고 사이트 및 자료, 출처
https://artinculture.kr/webzine/article-3295
https://leaflet.perrotin.com/view/155/paradigm-of-charcoal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489
첸니노 첸니니 저/구자현 역, 『회화술의 서』, 2023, 미진사
정종미,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 2023, 미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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